역시 이슈를 몰고 다니는 임요환.

솔직히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보는 사람 치고, 이 경기만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 옛날 방송국에서 지멋대로 만든 웃기지도 않게 생긴 이상한 옷 입고(정말 불만이었다. 스폰서가 생기고도 계속 그따위 옷이나 입히는 게... 친구에게 항상 - 오늘날의 유니폼처럼 - 스폰서 로고가 떡 박힌 옷을 입어야 지원이 확실해질 거라고 성토하곤 했었다) 땀 찔찔 흘려가면서 좁은 스튜디오에서 헉헉거리며 게임하고, 녹화방송으로 편집된 화면이나 봐오던 투니버스 시절에서 오늘날과 같이 10만 관중이 운집하며 e-sports라는 장르까지 붙일 수 있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임요환 대 홍진호의 피튀기는 게임 덕분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스타크래프트 위주로만 돌아가는 게임방송국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고, 만약 20년쯤 뒤에 홀로그램 영상으로 게임 즐기는 때가 찾아온다 해도 스타크래프트만 죽어라 방송해댈 것인가 걱정도 된다. 뒤늦게 방송국에서 다른 게임리그도 어떻게 띄워보려 해도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게임을 이해하기도 귀찮고, 스타크래프트가 뭔지 몰랐다가도 선수들이 좋아서 보는 사람들도 많아져버렸고 그런 사람들은 스타크래프트 배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다른 게임 또 익힐 생각은 좀처럼 해주지도 않고, 현실이 또 그러니깐 어쩔 수 없는 건지 그래도 스폰서는 줄을 서서 돈벌이는 되니까 좋아서 그러는지 방송국은 그래서 계속 스타만 줄창 방송해대고... 그런 불만 탓에 SKY 프로리그나 MBCgames쪽이나 거의 다 스타 중계도 보지 않는 편이긴 한데, 미운정 고운정 다 박힌 온게임넷 스타리그만은 아직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스타리그에서! 임요환과 홍진호가 붙는다. 결승이 아닌 건 아쉽지만, 그에 못지 않은 4강에서!!

너희 둘이서 오늘날 스타리그의 팔할을 키웠다. 방향이야 어찌되었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삼국지의 관우와 여포가 일대일싸움을 한다기에 (KOEI 게임하던 사람들은 일기토라고 하는 그것... -_-;;) 수백 합 정도 칼과 창을 맞부딪히며 싸우는 걸 자기도 모르게 머리속에 떠올리면서, 대결을 구경하려고 중국 그 넓은 땅덩어리 이곳저곳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3주전부터 가슴 두근두근 거리면서 기다려왔는데, 정작 대결이 시작되자마자 어이없게 관우의 발차기 세 방에 여포가 낙마하면서 사망한 꼴이랄까...

아 물론 발차기도 싸움 기술 중 하나이고 발차기하려다가 칼에 찔려죽을 수도 있으니 위험부담도 해야하지만... 뭔가 허무하잖아. 보통 사람들은 구경할 수 없는 진짜 화려한 발차기라서 감탄은 했는데... 그래도 뭔가 허무해. OTL


물론 발차기 세 방, 8배럭 2마린+5SCV 치즈러쉬를 세 게임 연속 감행해서 1경기 10분 남짓, 2경기 3분 40초, 3경기 4분 남짓만에 끝내버린 임요환을 욕할 마음은 추호도 없는데... 그리고 난 직접 플레이할 때가 되었든 구경하는 거든 물량전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배틀넷에서 뛰던 시절 도대체 왜 무한맵에 다들 목숨을 걸고, 왜 배틀크루저하고 가디언+디바워러+울트라, 캐리어만 수십개씩 끌고 다니려고 하고, 5분간 노 러쉬라는 말도 안되는 걸 지키라고 강요하는지 이해를 못했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전략으로 신출귀몰하게 끝내버리는 임요환 선수의 팬이고.

오늘 치즈러쉬는 그야말로 마이크로컨트롤의 극치였고, 그건 관우의 발차기로 치자면 말 위에 앉은 채 엉덩이의 힘만으로 뛰어올라 썸머솔트 킥을 날리는데, 그 썸머솔트가 왼쪽 무릎으로 여포의 이마를 찍은 뒤 오른쪽 무릎과 발등으로 연달아 턱과 가슴을 걷어차서 3 hit combo 를 날리고 다시 말등 위로 안착했다고 할만큼(...) 기가 막혀서 정말 그것만으로도 멋진 경기를 봤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래도 그래도 뭔가 가슴이 휑한 건 사실인 것 같고. 그래서 멍하니 이 새벽에 PC방에서 여기저기 접속해서 평소엔 시간 없어서 절대 들어가보지도 않는 DC 스갤까지 가서 어이없는 리플들 보고 피식피식 웃고 그러는 것 같다.


정말 홍진호는 코크배 이후로 하늘이 계속 버려버린다는 말 밖에 안나온다. 1경기는 SCV 둘을 정찰보낸 걸 볼 때 임요환이 치즈러쉬를 작정한 것 같았는데, 2경기 3경기는 정찰보낸 SCV 한 마리가 단번에 홍진호를 찾아가버렸고 방향도 가로. 그래서 반 계획적 반 우발적인 치즈러쉬를 감행한 것 같았다. 아 그래도 그렇지 정말 대각선 한 번 안나오냐... T_T 임빠(...)인 나도 3경기에서 SCV가 홍진호 진영으로 똑바로 정찰가고 홍진호의 앞마당해처리를 SCV가 빤히 지켜보는 걸 본 순간, 치즈러쉬로 2경기와 똑같이 무너지는 모습이 떠오르며(임빠임에도 불구하고 저그유저-_-) 가슴이 아프더라.

어쨌든 언제나 평범함은 거부하고 이슈 꺼리를 만들어버리는 임요환. 역시나 이번 경기로도 수많은 임까(... 안티 임요환)를 양산해버린 것 같지만. 솔직히 그가 잘못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세 번이나 같은 전략에 당한 홍진호를 탓해보려 해도, 3경기에선 드론이 테란진영 입구에서 치즈러쉬 나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못막았고. 필승전략이라는 게 있는 시점에서 게임은 게임이 아니게 되니까 말이 안되지만, 그런 것 접어두고... 치즈러쉬가 임요환에게 가장 자신있고 이길 수 있는 전략이라 생각되는데도 그걸 접어두고 물량전으로 가라는 게 더 스포츠정신에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그건 이미 '각본있는 드라마'잖아...

갑자기 든 생각인데, 임요환과 홍진호가 결승에서 맞붙었다 해도 임요환은 오늘과 똑같이 플레이했을 것 같다.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지... -_-;; 지금도 난리가 아닌데 결승에서 그랬다면 정말 뭔가 크게 뒤집어졌을 것 같다. 수만명의 관중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흥분하는 건 어쩔 수 없을테고, 그 중 천오백명쯤은 저지선을 뚫고 무대로 올라가서 임선수에게 바디체크를 구사하려 할 지도 모르고, 이미 응원 때문에 나뉘어져 있는 관중석은 이유야 뭐가 되었든 패싸움 양상으로 돌변할지도... 그런데 권투에서 1라운드 10초만에 KO가 나버리면... 다들 그러려니 하던가? -_-;; 꼭 이런 게 아니더라도, 스타리그와 더불어 게임방송들이 가야할 길을 새로 결정해야만 하는 사태가 더욱 크게 전개되었을 것임엔 틀림없다. 물론 지금도, 결승전에서 이 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할 때보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그런 상황임엔 틀림없고.


중간중간 광고가 줄창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1시간만에 끝나버려서 시간을 많이 안 뺏긴 건 다행이다 싶었는데... 결국 새벽에 이렇게 시간을 다 날리고 있으니. 뭔가 싱숭생숭해서 글도 잘 안 써져서 이만 강제로 글 종료. 이글루스의 이오공감으로 선정된 akachan님의 글과 덧글들을 보면 많은 생각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